(창작시) 터널

터널




빛 한 줌 없는 깊은 터널 속을 헤매고 있어요
여긴 어디일까요
난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
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걸까요

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
나는 오로지 출구를 향하고 있어요
하지만 출구는 없는 것 같아요
그렇다면 난 왜 걷고 있는 걸까요

갑자기 어디선가 괴물이 나타나 날 덮치면 어떡하죠
괴물은 밖에서도 안에서도 울고 있어요
밖에 있는 괴물은 보이지 않아서 무서워요
안에 있는 괴물은 날 계속 갉아먹고 있어서 두려워요 

걷다가 뭔가를 발로 찼어요
손으로 보이지 않는 바닥을 더듬으며 그걸 주워들었어요
썩은 악취, 끈쩍끈적한 질감
둥그런 공 같은 것에 구멍이 몇 개 뚫려 있네요 

여긴 나만 걸었을까요 
아니면 누군가도 걸었던 적이 있었을까요 
나 이전에 걸었던 누군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 
나 이후에 걸을 누군가는 어떻게 될까요 

내가 누구였는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 
도와달라고, 누구 없냐고 외치는 목소리도
공중에 흩어질 뿐이에요

아, 이제 정말 끝이군요 
끝이 가까워짐을 느껴요 

이제 그만 편안해지고 싶어요